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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하의 베이징 리포트] 헌원씨와 미야자키 하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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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109회 작성일 24-04-1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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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헌원씨는 중국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 있는 인물이다. 중국에서는 고고학으로 존재가 규명된 하·상·주 시대 이전 삼황오제의 시대가 있었다고 말한다. 헌원씨는 ‘오제’의 첫 번째 인물로 중국 문명의 시조로 여겨진다.
널리 통용되는 설에 따르면 헌원씨는 기원전 2700~2600년경 활동한 인물로 ‘삼황’의 마지막 황제 신농에게 반란을 일으킨 치우를 물리치고 신농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됐다. 의복, 수레, 문자, 60갑자를 창시하고 의학에 업적을 남겼다. 중국에서도 삼황은 신화 속 인물이지만 오제는 실존 황제로 여겨져 왔다. 청나라 말 유학자 캉유웨이 등은 삼황오제 전체가 후대 만들어진 신화라 주장했다.
청명절 연휴 기간 중국을 방문한 마잉주 전 대만 총통이 지난 4일 산시성에서 헌원씨 제사에 참석했다. 중국 정부가 해마다 주관하는 제사이다. 그는 방중 기간 대만인의 뿌리를 강조하고 평화의 가치를 역설했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했다. 지난 11일 대만에 돌아와 우리는 모두 염황의 자손이고 중화민족이라며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다. 중국 정부도 이 모든 행보를 높이 평가했다.
청명절 연휴 기간 중국 젊은이들의 화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인스타 팔로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개봉 소식이었다. 지난 3일 개봉한 영화는 청명절 연휴 단숨에 5억 위안(약 960억원)의 수입을 올리며 흥행 1위를 굳혔다.
영화 플랫폼 더우반에는 5만 건의 리뷰가 쌓여 있다. 개봉 전 해외 등지에서 본 이들의 평이다. 인스타 팔로워 영화가 난해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전쟁과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살아있다는 의견, 혼탁한 시대에도 진실된 사람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 등에 많은 중국 영화팬들이 공감을 표했다. 혈연으로 이어진 후계자를 찾는 대목을 두고 우주에도 동아시아가 있었네라는 비꼬는 댓글에도 많은 공감이 달렸다.
3월1일 <드래곤볼>의 작가 도리야마 아키라가 사망했을 때 중국 외교부는 애도 논평을 냈다. 중국 웹에는 <닥터 슬럼프>와 <드래곤볼>의 장면을 올리며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애도 메시지가 넘쳤다. <더퍼스트슬램덩크> 개봉 기념으로 소년점프가 제작한 ‘한 권으로 읽은 슬램덩크’가 여전히 지하철 인스타 팔로워 가판대에서 팔리며, 길에서 ‘SHOHOKU 10’(<슬램덩크> 등장인물 강백호의 학교와 등번호)가 적힌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농구소년도 볼 수 있다.
중국 전통문화 스타일을 의미하는 ‘궈차오풍’ 인형을 파는 팬시샵에는 한국산 캐릭터 ‘잔망루피’도 잔뜩 쌓여있다. 궈차오는 국수주의가 아니라 하나의 취향이다. 피트니스 센터에서는 자연스럽게 팝송과 록 음악을 틀어준다.
중국인 역시 세계와 연결된 삶을 살고 있으며 사람도 많은 만큼 다양한 문화적 취향이 존재한다. 중국 정부는 물론 중화민족을 강조하며 특정한 취향을 밀어준다. 이런 영향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코스프레한 사람에게 행패를 부린다거나, 생수 뚜껑이 빨간색이라는 이유로 유명 생수회사가 친일기업이라는 포화를 맞는 등의 사건도 벌어진다. 이런 모습이 중국의 전부처럼 비치는 것에는 한국 미디어의 책임도 있다.
마잉주의 이번 방중이 중국 정부의 선전에 이용됐다는 혹평이 대만에서 쏟아지고 있다. 국공내전 직후 태어나 평생 양안위기를 다뤘던 고위 정치인의 위기의식과 염원을 가볍게 평가하지 않는다. 다만 ‘중화민족’과 ‘헌원씨’로 누구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중화민족이 아닌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공감하는 젊은이들은 서로 대화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중화민족을 강조하는 중국을 보면서 대국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가 도리야마 아키라의 죽음에 애도 논평을 낼 때에는 대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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