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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더럽혀진 귀 씻어낸 최치원의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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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150회 작성일 24-03-2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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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최치원(崔致遠·857~?)은 번거로운 속세를 떠나 해인사에 은거했지만, 세상사로부터 귀를 막을 수 없었다. 결국 해인사에서의 은둔 생활을 접고,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화개천을 따라 걷던 그는 개울가의 너럭바위에 이르러 계곡 사이로 내다보이는 지리산 깊은 골짜기를 은거지로 선택했다. 그러고는 온갖 지저분한 말들에 시달리며 더러워진 귀를 개울물에 깨끗이 씻어냈다.
따르던 시종들을 물리치며 그는 짚고 온 지팡이를 개울가에 꽂으며 이 지팡이가 큰 나무로 자라나면 나도 살아 있는 것이고, 나무가 죽으면 나도 죽은 것으로 알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화개장터와 쌍계사 벚꽃길을 지나면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成佛)했다는 전설을 품은 칠불사(七佛寺) 오르는 길과, 대성동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가 최치원이 세속과 이별례를 치른 곳이다.
그가 귀를 씻었다는 너럭바위를 사람들은 ‘세이암(洗耳岩)’이라고 불렀다. 세이암에서 개울 건너 100m쯤 떨어진 곳에서 최치원의 지팡이는 하늘을 찌를 듯 큰 나무로 솟아올랐다. 경상남도기념물인 ‘하동 범왕리 푸조나무’가 그 나무다. 전설을 바탕으로 하면 높이 25m, 가슴높이 줄기둘레 6m의 이 나무의 나이는 1100년이 넘는다. 그러나 비슷한 기후의 다른 곳에서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자라는 여느 푸조나무와 견주면 아무리 높게 봐야 500년을 넘은 나무로 보기 어렵다. 지팡이가 자라났다는 전설을 믿기 어려운 것처럼 나무 나이 역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경쟁 상대 품는 나무의 협동 전략
오래된 나무에 담긴 사람살이 무늬
용틀임하듯 솟아오른 소나무
전설은 비유와 상징으로 이루어진 사람살이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나무의 용맹한 자람을 보며 선조의 위대함을 떠올렸고, 그의 가르침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전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전설에는 사람살이의 중요한 가르침이 담겼다. 온갖 더러운 말들이 춤추는 이즈음, 세이암에서 귀를 씻어내고 지팡이를 꽂은 최치원의 전설에 하릴없이 귀를 기울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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