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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송의 아니 근데]팟캐스트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 개국 8주년 기념쇼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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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132회 작성일 24-03-16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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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주지 않으면 내가 부르지 뭐…뭉클하다, 용감한 이 ‘몸짓’
팟캐스트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이하 비보)은 상징적인 프로그램이다. 2015년 시작한 이 ‘인터넷 방송’의 콘셉트는 결정장애를 앓고 있는 오천만 국민들을 위한 속 시원한 고민 상담소. 2024년 3월2일부터 3일까지, 비보는 개국 8주년을 맞아 공개방송이자 생일파티인 <비보쇼 오리지널 2024>(이하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비보쇼)를 개최했다. 장소는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웬만한 아이돌도 입성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 공연장이다. 5000석의 좌석은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이 불같은 경쟁을 뚫고, 3월3일 비보쇼에 다녀왔다.
송은이와 김숙이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무대 위로 솟아오르는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순간, 어쩐 일인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는데, 저기 우뚝 서 있는 저 조그맣고 용감한 두 사람과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나처럼 비상인 관객이 많아서, 마음 편하게 눈물 흘렸다.
2024년 비보쇼의 테마는 ‘미래’였다. 김숙과 송은이의 미래일기를 중심으로 그들의 노년 계획이나 미래의 비보 근황을 엿보는 구성이었다. 앙코르를 포함한 3시간은 다양한 코너, 쫀득쫀득한 콩트, 몸을 사리지 않는 송은이&김숙의 가무, 화려한 게스트 공연으로 꽉 채워졌다. 미래에 머슬마니아 대회에 출전하는 김숙이나 숲 해설사로 활동하는 송은이, ‘짝X 토크’나 ‘파급년 땡땡이’ 등은 팟캐스트를 들었다면 알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친밀한 재미를 선사했다. 또 ‘벗과 음악 사이’나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과 음악 사이’는 고민 사연을 받아 노래로 승화하는 비보의 인기 코너로, 이 공연에서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고민을 받아 가수 테이가 열창했다.
송은이가 윤복희의 모창을 하는 무대에서는, 분명히 웃음을 위해 기획되었을 텐데 노래를 너무 잘해서 놀란 눈으로 박수만 쳤다. 두 사람이 계속해서 옷을 갈아입고, 30㎏이 넘는 인형을 들고 춤추는 모습에서 체력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김숙이 공연 첫날 모종의 물의(?) 혹은 논란(?)을 일으킨 무대 때문에 진저리치는 반응은 현장에서 즐길 수 있는 웃음 그 자체였다. 마지막에 이르러 90세가 넘어서 ‘꼬부랑 할머니’가 된 송은이와 김숙이 비보쇼를 녹음하는 장면에서는, 오프닝에서 느꼈던 뭉클한 감동이 다시 몰려왔다. 아 또 촉촉해지네. 비보에 대해서, 그리고 비보가 불러일으키는 정동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비보의 역사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남성 중심 예능의 틈을 비집고 보란 듯이 활로를 뚫은 두 사람의 파티‘비보쇼’ 감동 식기도 전 들려온 김신영의 전국노래자랑 하차 소식왕언니가 되고 싶었던 그에게 짧은 기다림조차 허락하지 않은 졸렬함여성 희극인들을 응원하며 오늘도 ‘비보TV’의 업로드를 기다린다
비보는 2015년 일자리가 없었던 송은이와 김숙이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방송이다. 초기에는 유료 광고가 없어서 지인들의 가게를 홍보하거나, 자영업자 땡땡이의 광고를 삽입하기도 했다. 저작권 문제로 음악을 틀 수 없는 팟캐스트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땡땡이’라고 불리는 청취자가 보내준 음원을 트는 엉뚱함, 청취자의 고민에 맞는 게스트를 배치하고 새로운 코너를 만드는 기획력, 팟캐스트이기에 가능한 날것의 예능감이 빛났다. 그리고 송은이와 김숙은 이 방송을 통해 스스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방송이 불러주지 않으면 내가 스스로 부른다’라는 비보의 모토에 맞춤하는 전개이다.
송은이는 컨텐츠랩 비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CEO로 거듭났고, 김숙은 2020년 KBS 연예대상을 받았다. 이렇게 기획자로서의 송은이와 희극인으로서의 김숙을 새로이 발견한 비보는 두 사람이 다시 주류 미디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금까지 꾸준히 업로드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영웅 설화와도 닮았고,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여성 노동자가 이입할 수밖에 없는 구석이 있다. 희극인으로서 재능이 매우 뛰어난 두 사람이 직접 팟캐스트 제작에 뛰어들어야 했던 이유, 일자리가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여성 비혼 희극인’이기 때문이다.
2015년 당시 주류 미디어는 남성 예능 위주였고, 육아예능·관찰·가족예능·관찰예능이 중심이었다. 강호동과 유재석으로 요약되는 남성 희극인의 ‘라인’, <무한도전>(MBC)에서 파생된 숱한 남성 연예인 ‘끼리’의 판, 아기를 키우는 일상, 가족을 동원하다 못해 사돈의 가족까지 끌고 나와서 푸는 ‘썰’ 등등. 2016년 초 <무한도전>에서 진행한 ‘예능총회’에 출연한 김숙은, 당시 44세이던 송은이가 적성검사 결과 사무직이 맞다는 결과가 나와서 엑셀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뼈 있는 농담이었다. 어떤 용이 살기에, 어떤 물은 너무 개천이기도 한 것이다.
비보쇼에 다녀온 감동이 채 식기도 전, 김신영의 <전국노래자랑>(KBS) 하차 소식이 들려왔다. 김신영이 <전국노래자랑>의 MC가 된 지 1년5개월 만의 일이다. 갑작스러운 하차 통보와 관련하여, 젊은 여자 MC는 (프로그램 특성에) 맞지 않는다는 내부 의견이 있었다는 말이 돌았다.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소통 구조에 비판 여론이 끓자, KBS는 구체적인 시청률과 시청자 민원 게시판의 칭찬·불만 건수까지 공개하며 이것이 성차별적인 결정이 아님을 강조했다. 지극히 무례하고 편협한 태도이다.
<전국노래자랑>은 고 송해가 최장수MC로 기네스북에도 올랐을 만큼 송해 그 자체인 프로그램이다. 누가 그 자리에 오든, 하는 사람도 부담스럽고 보는 사람도 어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충성도 높은 팬덤이 있는 프로그램은 언제나 ‘뉴페이스’와 충돌하고, 이 과정에서 부당한 비난이 선을 넘기도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MC를 맡은 김신영은 자신의 출연료를 줄여서 받거나 어떤 스케줄보다 <전국노래자랑>을 우선시할 만큼 헌신적이었다. KBS는 2030의 시청률은 그대로고 고령층의 시청률은 떨어졌다고 고지하지만, 2030이 ‘텔레비전’으로 프로그램을 보지 않으며 보수적인 시청자는 익숙함을 따른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고령층의 시청률이 떨어진 것은 김신영의 잘못이 아니라 ‘송해의 부재’ 때문이며, 이 문제는 살아 돌아온 송해가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송해의 전국노래자랑’과는 또 다른 ‘김신영의 전국노래자랑’ 고유의 장점과 매력은 지워진다.
MC가 무대에서 발휘하는 능력은 시청률이나 게시판의 칭찬 건수로 집계되지 않는다. <유퀴즈 온더 블록>(tvN)까지 진출한 <전국노래자랑>의 스타 구희아씨(통칭 ‘군산 현모양처’ ‘군산 노란 원피스’)의 무대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폭주하는 끼를 발산하는 참가자와, 그가 벗어 던진 구두를 주우러 쏜살같이 달려가는 김신영의 뒷모습이 어우러져 완성되는 웃음의 세계를.
절대적으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 있다. <전국노래자랑>의 MC 자리가 그러하다. 뛰어난 플레이어인 김신영에게 <전국노래자랑>은 현재 단계에서 리스크는 아주 크지만 아직 이익은 없는 자리이다. 그럼에도 김신영은 <전국노래자랑>의 ‘왕할머니’가 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방송사는 그 시간을 축적할 기회를 ‘젊은 여자’로부터 박탈했다.
송해가 떠난 직후의 빈자리, 가장 어렵고 위태로운 시기를 잘 막아낸 김신영을 일방적으로 내쫓았다.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은 다시, 중년 남자다. 이 과정에서 성차별 논란이나 정치적 이유가 거론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빈약한 통계를 중립적인 근거인 양 제시하는 졸렬함보다는, 차라리 솔직한 게 나았을 것이다.(그러고 보니 이쯤에서 또 의문이 생긴다. 언제부터 마흔이 넘은 여자를 한국 사회가 ‘젊은 여자’로 취급해주었는지?)
송은이는 여성 희극인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는 환경에서 비보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뚫었다. 여기에는 송은이 개인의 능력 이외에, 김숙이라는 든든하고도 빼어난 동반자, 다른 것을 원하던 소비자들의 욕망, 약간의 운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과 안목을 바탕으로, 후배 희극인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자 끊임없이 ‘판’을 깐다. 칼럼니스트 복길은 자신의 책 <아무튼, 예능>(코난북스, 2019)에서 송은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힘을 빼도 괜찮고, 불필요한 대결이나 견제를 하지 않아도, 명예를 좇지 않아도, 세력을 만들거나 다수가 선택한 삶의 방식대로 살지 않아도 괜찮은 곳. 나는 송은이의 세상에 살고 있다.(219쪽) ‘송은이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 비보쇼를 함께 본 친구는 이런 감상을 남기기도 했다. 김숙이야 워낙 뛰어난 희극인인 걸 알고 있었지만, 콩트를 보니 송은이도 새삼 대단하다. 이런 사람이 진행자나 기획자로서의 면모만 부각되었던 것이 너무 아쉽다.
송은이가 희극인에서 진행자로, 진행자에서 기획자로 빠르게 전환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세계는 여전히 불합리하다. 이런 상황에서 송은이 개인이 너무 많은 무게를 짊어지지 않기를, 송은이처럼 ‘기획력마저’ 뛰어난 평범한 개인이라도,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충분한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비보의 업로드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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