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의 묵묵]서울시청의 궤변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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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132회 작성일 24-03-11 23:31본문
사람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그런데 서울시는 권리의 이름으로 이 당연한 권리를 부인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시설에 들어가는 것을 ‘장애인의 주거선택권’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문서에나 나올 법한 문장들이 속출한다. 제목은 ‘자립절차’인데 ‘시설입소’가 들어 있고, 퇴소의사를 밝힌 경우를 상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거부 결정을 ‘강제수용’이 아니라 ‘입소지원’이라고 쓰고 있다. 참으로 이상한 어법이다.
다음 이야기에서 당신은 자유를 느끼는가 부자유를 느끼는가. 스물일곱 살에 시설입소를 선택한 규선씨 이야기다(<집으로 가는, 길>, 오월의봄). 그는 중증뇌병변장애인으로 어려서부터 방에서만 지냈다. 어머니가 시설 이야기를 꺼냈을 때 순순히 응했다. 어머니와 동반자살을 시도한 뒤였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그때를 기억한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짐밖에 안 되는 걸 내가 뻔히 아는데. 아무도 등 떠밀지 않았지만 등 떠밀린 이 상황을 서울시의 말처럼 ‘주거선택권’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렇다면 규선씨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주거선택권의 실현으로 시설에 가게 된 게 기뻐서? 자유와 권리에 대한 우리의 언어가 여기까지 타락해버렸다.
실제로 이번에 서울시가 재입소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애써 찾아낸 사례들은 규선씨 사례의 복사판이다. 한 장애인은 조사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 시설에서 받아줬으면 좋겠다. 부모 중에도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 시설이 포화상태라고 하는데 내가 죽은 이후에는 자녀를 시설로 보내고 싶다. 돌봄 없는 사회에 대한 절망에서 ‘이거라도’ 하는 심정으로 내뱉는 말을 희망으로 알아듣다니. 서울시장과 공무원들의 귀가 놀랍다 못해 무섭기까지 하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장애인 돌봄을 가족에게 떠넘겨온 당국자로서 부끄러움이 들지는 않던가. 장애인에게 노년이 되어도 외롭지 않도록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또 장애인 부모에게 당신이 죽은 뒤에도 아이는 지역사회에서 시민들과 함께 잘 살아갈 거라고, 우리가 그렇게 만들 거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던가.
‘자유’와 ‘권리’만큼이나 ‘역량’과 ‘적응’을 포함한 문장들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장애인의 자립 역량을 면밀히 조사한 뒤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또 탈시설 후에도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서 적응에 문제가 있으면 재심사하고 재입소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묻고 싶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고자 할 때 전문가들로부터 역량을 점검받아야 할 일차적 대상은 해당 장애인인가 서비스를 제공할 당국인가. 사회 적응과 관련해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받을 대상은 장애인 개인의 역량인가 장애인에 대한 지원서비스 체계인가. 장애를 개인적 결함과 비극으로 몰아간 의료 모델에 대한 비판이 시작된 지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비판의 대상이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뒤늦게 등장하는 이 시대착오를 어찌해야 하는가.
노래를 만드는 공장
어떤 동행
다시, 정상운행
가장 놀랐던 것은 ‘판단’이라는 말의 용례다. 이 말은 누군가의 ‘삶의 자격’을 따질 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더구나 시가 시민을 향해 쓸 수 있는 말은 더욱 아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장애시민의 경우 함께 살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를 먼저 판단하겠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자립생활 지원절차가 자립생활 불가능자 선별절차와 같고, 주거선택권 실현절차가 주거선택권 상실절차와 같아진다. 탈시설도 시설수용과 반대말이 아닌 것이 되고. 그야말로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인 꼴이다.
최근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탈시설 정책 추진을 권고했다. 그런데도 시설 거주도 탈시설이라며 억지를 부리는 이유를 모르겠다. 살아가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고, 부자유를 택할 자유도 자유이며, 권리를 상실할 권리라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는 궤변론자가 서울시청에 앉아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서울시가 할 일은 죽음과 부자유, 권리 상실 상태를 시민들의 삶에서 줄여주는 것이지 궤변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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