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문화와 삶]존재와 부재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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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166회 작성일 24-03-14 05:52본문
그는 자신이 북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생의 굵직한 사건들을 진술한다. 이때 어머니의 시신을 병원에 넘기고 돈을 마련했던 비극적인 사연까지 이야기하게 되는데, 해당 병원이 그러한 불법적인 행위를 한 적 없다고 발뺌하자 기완은 궁지에 몰린다. 설상가상 증인으로 나서주겠다던 공장 동료 선주는 그를 배신하고 로기완이 정치적 망명이 인정되는 북한 사람 행세를 하여 난민 지위를 획득하려는 조선족이라고 거짓 진술한다. 기완은 난민의 자격을 갖추었지만 이를 입증하지 못해 고초를 겪는다.
이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의 ‘다니엘’이 실업급여를 받을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음에도 서류를 온라인으로 제출하라는 관공서의 요구 앞에 무력해지는 모습과 겹쳐 보인다.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노인인 다니엘은 구직을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이곳저곳 전전하며 그 경험을 일일이 수기로 작성해 가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런 형식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차가운 답변뿐이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복잡한 심사 절차 앞에 번번이 좌절하는 인물들을 보며 비참함, 연민, 수치심과 같은 단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언어를 초과하는 감정을 느꼈다. 여전히 나는 이를 형언할 어떠한 단어도 찾지 못했다.
각자의 처지는 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이와 같이 존엄성을 위협해 오는 황당하고도 잔인한 상황에 공감할 수 있다. 사람을 쉽게도 모욕 주는 이 사회의 시스템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성실을, 당신의 가난을, 당신의 당신 됨을 입증하라고 다그치며 인간을 문밖에 세워두기만 하는 거대하고도 견고한 성 앞에서, 영영 문서화되지 않을 단서들만 잔뜩 안아 들게 되었을 때 느끼는 허탈감과 울분을 우리는 깊이 이해한다. ‘나’를 구성하는 생의 파편들이 서로 아귀가 맞지 않아 조각조각 무용해질 때의 막막함 역시 잘 알고 있다.
국민의 방송
후회 없이, 함께, 꿈을 꿀 수 있을까?
한 수 접는 마음
조해진 작가가 <로기완을 만났다>에 서술했듯, 우리의 출생과 죽음, 결혼과 건강을 기록하는 관공서의 수많은 서류들은 개인의 절대적인 존재감이나 살아온 삶을 증명해주지 않는다.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인격적 주체를 배제하며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생체정보만을 감시하는 현 사회의 모순적인 통치 방식을 지적한 바 있다. 범죄자들의 신원확인에 활용되었던 인체측정학 기술이 20세기 이후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확장됨에 따라 정체성은 개성과 인격과 무관해진 채, 생물학적 데이터로서의 기능만을 지니게 되었으며, 인간은 자기 정체성에 관여할 수 없는 벌거벗은 생명으로 환원되고 말았다는 진단이다.(<벌거벗음>, 김영훈 옮김, 인간사랑, 2014) ‘나’의 정체성은 본질적인 ‘나’와 무관해졌으며, ‘나’를 입증하는 생체 정보들에 ‘나’는 개입할 수 없으므로 ‘나’로부터 ‘나’가 철저히 소외되는 아이러니가 생겨버린 것이다. 아감벤이 정체성의 변화와 그 기원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는’ 정체성을 규정 및 관리하는 작금의 제도가 결코 ‘자연 그대로’는 아니라는 사실을 내보이기 위해서일 테다.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을 증명하는,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을 부정하는 서류들과 씨름하며 당신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지.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 우리와 동떨어진 이력으로 우리를 입증하고 우리로부터 추방당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내 존재를 증명하는 모든 서류에 나는 부재한다.
주택으로 쓰이면서도 법적으론 비주택으로 분류되는 오피스텔의 법률적 지위를 명확히 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때에 따라 주택보다 강한 규제를 받기도, 반대로 규제를 피해가기도 하면서 시장 혼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이 12일 발표한 ‘오피스텔 관련 현황과 제도 개선 방안’에 따르면 ‘주거용 건물’로서의 오피스텔 비중은 점차 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오피스텔은 2022년 이후 100만호가 공급됐으며, 이중 70~80%가 주거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연립주택의 총물량(44만7000만호)보다 많은 수치다.
하지만 법적으로 오피스텔은 ‘주택과는 다른 건축물’로 분류된다. 건축법 상으로는 일반업무시설, 주택법 상으로는 준주택으로 분류되다보니 건축 수준이나 주거 여건이 주택보다 열악한 편이다. 주택법이 규정하고 있는 최저주거기준도 적용되지 않는다. 주택은 입주민의 권리를 명시한 공동주택관리법의 적용을 받는 반면, 오피스텔은 집합건물법의 적용을 받아 건물 관리의 강제력도 약한 편이다.
오피스텔은 주택에 적용되는 금융규제도 빗겨간다. 오피스텔을 포함한 비주택 LTV(주택담보인정비율)는 주거용이냐 업무용이냐와 관계없이 담보금액의 70%까지 대출 가능하다. 규제지역에 있는 주택은 30~50%의 LTV 제한이 적용되는 반면, 오피스텔은 규제지역에 속해있더라도 비주택 기준의 LTV를 적용받는다. 주택과 달리 대출 시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도 없다. 이 때문에 부동산 호황기에는 아파트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대체 투자처로 간주돼 투기 수요가 몰리기도 했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의 경우 오피스텔도 주택과 동일하게 40%가 적용된다. 2023년 4월 전까지는 오피스텔을 포함한 비주택 담보대출의 원금 상환기간이 일괄 8년으로 고정돼있어 최장 40년에 걸쳐 상환하는 아파트에 비해 DSR 규제 수준이 강했다. 그러나 ‘오피스텔 차별 논란’이 커지자 주택과 동일하게 상환기간을 인정해주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다. 특례보금자리론 등 주택구입 관련 정책모기지 상품은 여전히 이용할 수 없다.
반면 오피스텔에 세금을 부과할 때는 주택으로 간주된다. 다만 세금 부과 방식은 용도와 세목에 따라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오피스텔 취득세는 용도와 관계 없이 4%의 단일세율을 적용받는다. 그러나 주택 과열기였던 2020년 8월 이후부터는 주거용 오피스텔을 취득한 사람이 추가로 주택을 구입할 때는 2주택자로 간주돼 취득세 중과세가 적용된다. 재산세는 오피스텔을 주거용으로 사용할 때 과세부담이 더 줄어들지만, 종합부동산세는 주거용의 과세부담이 더 크다.
보고서는 일관성있는 제도 적용이 어려운 이유로 ‘주거용 오피스텔’과 ‘업무용 오피스텔’의 개념이 공식화 돼 있지 않다는 점을 꼽는다. 보고서는 오피스텔의 주거용 판단 여부는 보유자의 신고, 실사용 용도에 대한 사후 검증을 통해 이뤄지다보니 판정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임대인들은 오피스텔 주택 수 인정과 이에 따른 다주택 중과를 피하기 위해 신고는 업무용으로 하고 임차인의 전입신고를 막는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보고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오피스텔의 법적 지위부터 명확히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주거용 오피스텔에도 주택에 준하는 수준의 금융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규제 역시 동일한 수준으로 적용해 오피스텔과 주택 간 ‘형평성 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구체적으로는 오피스텔의 사용 용도 변경 신고를 의무화하고, 주거용 오피스텔 거주자의 84%를 차지하는 세입자들을 위해 최저주거기준도 적용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놨다.
말똥구리랑 쇠똥구리는 이웃사촌. 그중 말똥구리는 예민한 성질인가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항생제를 먹은 말들이 싼 똥을 굴렸다가 그만 변을 당한 모양. 한번은 몽골에서 말똥구리 200마리를 수입했다던데, 녀석들 안부가 궁금해. 한편 쇠똥구리는 어떻게든 버티는 중인가 봐.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덩만 참말 그러한가.
쇠똥구리는 똥을 둥그렇고 야무지게 뭉쳐 삐뚤빼뚤 밀고 간다. 덩어리가 약간 촉촉할 때 훨씬 잘 굴러가. 솜털이 가슬가슬한 참다래나 복숭아처럼 둥그런 똥덩어리를 발차기로 굴리는 걸 보면, 저는 힘들겠으나 엄청 귀여워. 한정반 리미티드 에디션이 아니라 ‘내 밑으로 오디션’ 자랑대회를 하는 듯 뽐내면서 어기영차. 지나가던 개 한 마리 멈칫. 개들 사이에서 공중화장실 격인 전봇대에 실례를 한 뒤 쇠똥구리를 쳐다보는데, 똥냄새에 컹컹 뒷걸음질. 똥을 굴리기를 참말 잘했지 안 그랬음 개에게 물릴 뻔. 쇠똥구리에게 학삐리(?)들이 시시포스의 신화를 들려주곤 하는데, 웃기지 말라고 그래. 쇠똥구리에게 똥 굴리기는 형벌이 아니야.
가정이나 사업을 경영하는 일도 일단 작은 덩어리부터 잘 굴려야 해. 한 주부가 여행을 떠나면서 냉장고에 붙여 놓은 글귀. ‘까불지 마라!’라고 적힌 다섯 글자 경고문. 해석인즉슨 ‘까스불 조심해라. 지저분하게 지내지 말고 청소해라! 마누라만 생각해라. 라면만 주야장천 먹지 마라’라는 말로 퍼뜩 알아먹어야지. 머리를 잘 굴려야 살아남는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봄치마는 팔랑팔랑, 날씨도 참 좋을시고. 방보다는 마당이, 동네보다는 꽃핀 공원과 산자락이 똥덩어리를 굴리기에 좋은 장소. 당신은 시방 무엇을 굴리며 살아가는가. 어떤 이들은 혀로 거짓과 독설을 굴리고, 두뇌로는 얍삽한 셈을 굴리며 삿된 이익에 탐욕스럽다. 저 스스로 싸지른 똥을 굴리면서도 부끄러움조차 몰라.
새출발
춘삼월
방실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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