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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과학 한 스푼]맛있게 퍼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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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55회 작성일 24-05-06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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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작은 국숫집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5평 남짓한 규모에 메뉴도 매우 단출해서 잔치국수와 멸치 칼국수가 전부였습니다. 유동인구도 많지 않은 이곳에서 과연 장사가 잘될까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뒤로하고, 우선 잔치국수 하나를 시켜보았습니다.
드디어 등장한 잔치국수는 잔치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주 푸짐한 양입니다. 잔치국수의 핵심은 감칠맛 나는 시원한 국물입니다. 보통은 멸치, 다시마, 말린 표고버섯 등을 끓는 물에 우려내어 육수를 만드는데, 멸치에는 이노신산, 다시마에는 글루탐산, 표고버섯에는 구아닐산과 같은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런 유용한 성분들은 왜 재료 안에 가만히 있지 않고 국물로 확산되어 나오는 걸까요?
확산이란 물질이 농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멸치 육수를 예로 든다면, 멸치 안에 모여있던 물질들이 바깥으로 빠져나오면서, 농도가 옅어지고 희석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물질들이 한곳에 모여 있지 않고 넓게 퍼지려는 경향을 과학자들은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엔트로피란 무질서한 정도를 나타내는 과학 용어인데요, 모여있지 않고 흩어질수록 무질서도는 증대됩니다.
이러한 확산은 크게 3가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첫째는 열입니다. 물질이 이동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한데, 조리할 때 가해지는 열이 이러한 에너지의 공급원이 됩니다. 따라서 미지근한 물보다는 팔팔 끓는 물에서 우려내야 원하는 성분을 제대로 얻을 수 있겠죠. 두 번째 요인은 확산되는 물질의 크기인데, 아무래도 그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확산이 수월하게 일어납니다. 멸치에 포함되어 있는 이노신산과 같은 작은 분자들은 짧은 시간만 우려내도 바깥쪽 육수로 충분히 확산돼 나오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크기를 갖는 단백질, 지방과 같은 고분자들은 확산을 위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진한 곰탕의 경우는 장시간 우려야만 하는 것이죠.
마지막 세 번째 요인은 확산되어 들어가는 매질의 상태입니다. 육수의 경우는 보통 그 매질이 물이기 때문에, 물질이 확산되는 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갈비찜처럼 유용한 맛성분들을 농도가 높은 육수에서 고기 안쪽으로 확산시켜야 할 경우라면 별도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전에 충분히 숙성시키고, 고온에서 오래 가열해 고기 조직을 가급적 연하게 만들죠. 그러면 연해진 고기 틈 사이로 맛성분들의 확산이 잘 일어납니다.
가공육이 먹음직스러운 이유
주방을 책임지는 금속
꼭 기름으로 튀겨야 하나?
한편 확산은 유용하지 않은 물질을 제거하는 데도 쓰입니다. 예를 들어 수육은 고기를 삶는 과정에서 잡내나 기름 등을 바깥으로 확산시켜 고기의 담백한 맛만 남깁니다.
지금은 서민 음식이 되었지만, 사실 잔치국수는 말 그대로 잔치 때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싹 비운 국수 그릇을 바라보면서 지금처럼 풍요로운 시대를 살 수 있게 되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이 하나둘 차기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당 혁신보다는 전당대회 준비에 집중하는 실무·관리형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면서 본격적인 당권 행보를 위해 몸을 푸는 모양새다. 다만 현행 ‘당원 투표 100%’ 규칙이 이번 비대위에서 어떻게 개정될지에 따라 당권 주자들의 움직임이 달라질 수 있다.
대통령실과 친윤(석열)계 지도부 간의 수직 관계가 총선 참패의 원인이 됐다는 자성론이 당내에 확산하면서 비윤계 인사들에게 차기 당권의 배턴이 넘어간 분위기다. 차기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나경원 서울 동작갑 당선인, 안철수 경기 분당갑 당선인, 유승민 전 의원, 윤상현 인천 동미추홀을 당선인은 모두 지난해 전당대회 당시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에 의해 출마를 포기하거나 낙선했다.
안철수 당선인은 1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차기 당대표 선거 출마에 대해 지금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게 정답이라면서도 ‘전당대회 룰에 민심이 반영되면 나서보겠다는 생각이 있나’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안 당선인은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김기현 전 대표에게 밀려 2위로 낙선했다.
안 당선인은 전당대회 규칙에 대해 5대5(당원 투표 50%·여론조사 50%)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번에 뽑히는 당대표는 지방선거를 지휘한다. 당심 100%만으로는 그런 대표를 뽑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안 당선인은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번 총선 참패에 대해서 본인 나름대로 성찰이 우선이 아니겠나라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유 전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전당대회 출마 여부에 대해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며 가능성을 열어 뒀다. 그는 당원(투표) 100%가 불과 1년 반 전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해서 지금 비서실장 간 그분(정진석 전 의원)이 한 건데, 당원 100% 하면서 당이 아주 망가졌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룰 변경) 부분은 당이 얼마나 정신을 차렸냐는 하나의 변화의 표시로,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나경원 서울 동작을 당선인은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당심 100%는 저를 떨어뜨리려고 한 룰이었다라며 의견수렴을 해서 조금 민심을 섞는 게 좋겠다면 섞고 그렇게 바꾸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자신이 주도하는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인구기후내일포럼’에 가입해 달라고 22대 총선 여야 당선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한 국민의힘 당선인은 이에 대해 ‘통상적인 일’이라고 말했으나 일각에서는 당권 행보를 위한 사전 세력화라는 해석도 나온다.
윤상현 인천 동미추홀을 당선인은 이날 KBS라디오 <전종철의 전격시사>에서 전당대회 출마 여부에 대해 지금은 당대표 얘기할 때가 아니다라며 확답을 피하면서도 (차기 당대표는) 수도권 중도로서 외연을 확장하는 가능성, 비전을 제시하는 대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인 인천 지역의 윤 당선인은 총선 후 당 혁신 세미나를 독자적으로 개최해 오고 있다. 윤 당선인 역시 민심에 순응하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전당대회 규칙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윤계 당권주자들은 이철규 강원 동해·태백·삼척·정선 당선인의 원내대표 출마설에 일제히 거부감을 드러냈다. 나 당선인은 이 당선인과 ‘나-이 연대’로 묶이는 것에 대해 기분이 나쁘다, 고약한 프레임이라며 제가 정말 당대표를 하고 싶다면 제가 제 의지대로 판단해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당선인은 가급적 수도권 당선자분들 중에서, 다선 의원 중에서 이 역할(원내대표)을 맡으시면 좋지 않을까라며 강원 지역의 이 당선인을 배제했다. 국민의힘은 이 당선인의 원내대표 단독 출마에 대한 당내 반발이 거세지자 원내대표 선거를 연기한 상태다. 이 당선인은 출마 여부를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5·18 진상규명위 ‘성폭력 피해자’ 간담회 독점 취재
목포에 나같은 피해를 입은 사람이 산다고 해서 만나게 해달라고 했어요.
김민숙씨(가명)는 1980년 당시 쌍둥이 아기 엄마였고 임신 3개월의 임신부였다. 당시 회사를 다니며 승용차로 차량 운행 업무를 했다. 여성이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 흔치 않은 시대였다. 5월 19일 퇴근해 시가(시댁)에 맡긴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길이었다. MBC 앞 도로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고 군인들이 길을 막고 있어 전남여고 후문 골목으로 들어갔다.
후문 담벼락에는 총을 찬 계엄군 5~6명이 있었다. 그들은 김씨의 차량을 멈추게 했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고 사정했지만 계엄군은 차량 열쇠를 빼앗았다. 김씨는 한 번만 살려주세요. 살려주면 허란대로 다 할게요라고 했다. 계엄군은 차에 성냥을 대면서 불을 지르겠다는 협박도 했다. 열아홉에 면허 따서는 저한텐 오로지 그것밖에 없었어요. 차만 불 지르지 마라고 하니까 ‘불 안 지를 것이니 말 들을 거냐’고 하더라고요. ‘허란대로 헐게요’ 했지요. 이후 계엄군 2명은 차량 뒷좌석으로 김씨를 밀어넣고 교대로 강간했다. 나머지 군인들은 차 밖에서 보초를 섰다. 당시 계엄군에게선 입 냄새, 땀 냄새가 많이 났다. 그들이 차 키도 가져가 집에 들어가지 못했고 다음날 동틀 때 귀가했다. 시가에는 군인에게 차 키를 뺏겼다고만 했다.
사건 이후 조산원에서는 유산기가 있다 했다. 김씨는 그렇게 아이를 잃었다. 자신의 차량에서 강간당한 기억 때문에 한동안 운전을 할 수 없었지만 운전 외에 배운 게 없어 다시 해당 차량을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몇 해가 지나 돈이 모였을 때에야 차량을 바꿨다. 강간 이후 남편과의 성관계가 어려워져서 사이가 나빠졌고 아이도 생기지 않았다.
평생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도, 얘기하려고도 하지 못했다. 남편과 시가 식구들에게 밝혀질까봐 늘 전전긍긍했다. 여전히 군복을 보면 임신한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럽고 무서워 두 아들은 군대를 의무경찰로 보냈다. 사건 당시 ‘냄새’에 대한 트라우마로 예민하다. 한 번 병원에 입원했을 땐 간호사의 향수 냄새 때문에 퇴원할 때까지 오지 마시오. 왜 이쁜 얼굴에 농약을 뿌려요라고 할 정도였다. 3년 전부터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상담을 받으면서 자신이 성폭력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계엄군에게 맞은 후유증으로 앞니 2개가 흔들린다.
2018년 서지현 검사가 ‘미투’ 고백을 하는 것을 보면서 ‘검사도 저러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 김씨는 방송에서 5·18 민주화운동 성폭력 신고 방송 자막을 보고 정부 공동조사단에 직접 신고했다. 처음 조사관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했을 때는 더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잊어버리려고 했던 일을 꺼내는 일은 그의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그럼에도 위원회 조사에서 그는 말했다. 성폭행당한 일을 잊어버리고, 내려놓으려고 해도 그것만큼은 안 되더라고요. 남들은 5·18 영화도 보러 간다는데 나는 그걸 영화로 보는 것도 싫어요.
지난해 12월 김씨는 드디어 위원회로부터 ‘진상규명’ 결정을 받았다. 신고한 지 5년 만이었고 사건이 일어난지 43년 만이었다. 위원회 조사를 받으며 자신과 비슷한 피해를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라면 평생 누구에게도 자유롭게 하지 못한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제가 목포에 있는 그 사람 좀 소개해주면 안 될까요 그랬어요. 만나면 얼마나 좋겠냐고 했죠.
28일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 간담회에서 민숙씨는 말했다. 그때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어서 살려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 생각했지만 정신과 약을 수년 동안 먹었어요. 너무 힘들고 견딜 수 없더라고요. 나는 봄이 왔다는 아카시아 냄새가 너무너무 싫어요. 어제 우리 손자가 휴가 나왔는데 할머니한테 올 때는 군복 입지 말고 그냥 옷 입고 오라고 했어요. 그는 말하는 내내 울먹이고 가슴을 부여잡았다. 김씨는 발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그래도 오늘 우리가 진짜 만났잖아요. 그냥 이렇게 산 것만 해도 감사해요.
5·18 성폭력 피해자들이 만났다. 1980년 이후 44년이 지나서다.
이날 오후 1시10분 광주광역시 북구 전남대 김남주기념홀. 간담회는 2시 시작이었지만 일찍 도착한 이들이 많았다. 제일 먼저 도착한 이남순씨는 어떤 기분이냐는 질문에 모르겠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이날 참여자들은 모두 원 모양으로 앉았다. 모두 평등하게 아픔을 나눠보자는 취지였다. 이다감 상담전문가가 간담회를 진행했다. 전라도 말로 ‘아따 애썼다’는 고생했다는 말이죠. 수고하셨어요. 내가 나한테 얼마나 야박했던지요. 가슴에 손을 대볼까요. 자살 시도했던 분도 계시고 죽지 못해 살았다는 분도 계셔요. 뛰고 있는 심장에 손을 대볼까요. 살아도 살지 않은 것 같았다고, 얼마나 소리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먼저 이다감 상담전문가가 두 팔로 몸을 감싸는 ‘나비 포옹’ 자세를 유도하자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끄러워서 얼굴 보고 싶지 않다던 분, 뭐가 좋은 일이라고 모이냐고 했던 분, 너무 외로웠고 이 피해를 당한 사람이 나 혼자인 줄 알았다, 함께 하고 싶었다는 분도 계셨어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고 싶다고 하셨죠.
피해자들 앞에는 초록색 원 모양 천 위에 올려진 꽃 ‘작약’과 작은 조각상 ‘여신상’이 있었다. 5월에 피는 작약의 꽃말은 ‘정이 깊어 떠나지 못한다’이다. 이 위원은 여신상은 어떤 피해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의 온전함을 훼손시킬 수 없다는 걸 표현했고 작약은 오늘 끝날 때 정이 깊어가지고 또 만나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서 준비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1980년 5월 18일 최초 투입된 제7공수여단이 여성의 옷을 벗기라는 대대장의 지시를 받고 작전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지시 이후 ‘첫 여성 강제 탈의’ 피해가 발생했다. 도심 시위 진압작전 단계에서 일부 계엄군은 주택가 차량 안에서, 군용트럭으로 이동 후 강간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곽봉쇄작전 단계에서도 성폭력이 일어났다. 일부 계엄군은 도심 외곽으로 여성들을 끌고 가 강간했고 호송 차량 또는 상무대 등 연행 단계에서도 강제추행, 강간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5·18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을 구금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성고문도 있었다.
만약 3명만 증언했다면 누구도 믿지 않았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함께 증언을 해주셨기에 진상규명을 할 수 있었어요. 52명 중에 거절하신 분들도 많았고 돌아가신 분, 정신병원에 계신 분들, 알츠하이머 때문에 증언할 수 없는 분들이 많았어요. 증언해주신 여러분들이 주인공이고 산 증인이세요.(이다감 상담전문가)
이날 1번, 181번 등 사건 번호로 되어 있었던 피해자들이 처음 자신의 이름을 공개했다. 10명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다. 성폭력 사실에 대해서 말할 때는 호흡을 골랐고 피해 사실을 자세하게 말하지 못했다. 이들은 간담회를 위해 ‘5·18과 오늘의 나’를 상징하는 물건을 가져와 자신에 대해 표현했다.
저는 이지순(가명)입니다. 5·18 때 열아홉 살이었어요. 고3 때 대검으로 맞았고 이렇게 살게 됐어요. 44년이라는 세월이거든요. 그때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악몽 같은 악몽을 살아 왔습니다. 나는 봄이 싫어요. 정말 꽃도 싫고요. 푸름 자체도 싫을 때가 있는데 그나마 그래도 나를 치유해준 게 파란 이파리인 것 같아요.
이지순씨(가명)는 고등학교 때 책을 좋아했고 글을 쓰고 싶었다. 5·18 당시 가게에서 일하다 집에 가는 길 막다른 골목에서 계엄군 수 명에게 맞고 강제추행을 당했다. 옆에 있던 아저씨가 죽을 만큼 맞는 걸 지켜봤고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지금은 이런 얘기도 할 수 있지만 그 순간에는 아무 말이 안 나왔어요. 그는 그때 워커에 맞은 자국이라며 정강이 상처를 보여줬다. 이것이 날 44년을 괴롭히고 있어요. 그는 <봄을 초대하고 싶다>는 시집을 가져왔다. 다 함께 겪은 아픔에 봄을 초대하고 싶어서, 같이 보면 괜찮을 것 같아서 이 책을 가져왔어요.
윤인순씨(가명)도 그때 열아홉 살이었다. 한 가게에 근무하다 밖을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집에 가려고 사장님 댁에 말하러 가는 길 계엄군에게 성폭행당했다. 위원회에서 조사받는 중에 군인이 입은 옷 색깔이 어땠는지 물어보는데 까만 것밖에 안 보였어요. 제가 볼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눈을 뜨면 죽을 것 같았거든요. 윤씨는 그림을 잘 그려 학교 다닐 때 인기가 많았다고 했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줄 설 정도였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그는 이날 스케치북과 필통을 가져왔다.
조사팀은 ‘진상규명 의견’으로 전원위원회에 올렸지만 전원위에서 ‘불능’ 결정을 내린 사건의 피해자 이연순씨도 이 자리에 왔다. 반갑습니다. 5·18 당시 나이는… 이씨는 나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참석자들이 괜찮아 괜찮아요라며 그를 다독였다.
18세였던 이씨는 당시 ‘버스 안내양’이었다. 도청 앞에 버스가 도착했을 때 군인 두 명이 학생들을 끌고 내려갔고 한 명이 남아 있었는데 자신을 붙잡았다. 옷을 앞뒤로 잡아당기더니 자신의 몸에 올라탔고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온몸이 처참한 상태였다. 옷은 다 찢어지고 군인은 달아났고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그는 평생 말도 못 하고 가슴앓이만 하고 지내왔다며 그때는 그래도 죽이지 않고 짓밟고만 갔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남순씨가 계속 울먹이며 말하는 이씨의 어깨를 계속 토닥이며 살아준 것이 다행이지라고 말했다.
이씨가 피 흘린 상태에서 집에 가니 엄마는 성폭행 이런 거 말도 하지 마라고 했다. 며칠 후 치료를 받으러 전남대병원에 갔다가 피 흘리는 사람이 응급실 앞에 줄을 너무 많이 서 있어 병원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여기 와서 이런 말이라도 하니까 가슴이 후련하고요. 아직은 뭐 해결된 게 없어요. 그래도 제가 용기가 있는 거잖아요. 다들 박수를 쳤다.
윤경회 위원회 조사4과 3팀장은 조사팀은 피해자를 어렵게 설득해 조사했는데 그 결과가 ‘진상규명’이 아닌 ‘불능’ 결정이 내려졌다며 국가가 피해자에게 43년 만에 보내는 종이 쪽지가 ‘너의 피해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이라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살면서 처음으로 애간장이 녹는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지난해 12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조사보고서를 의결했고 6월 종합 보고서를 채택한다. 윤 팀장은 이 보고서의 첫 번째 독자는 피해자 선생님들이라고 계속 생각했다며 우리 모두 함께 한 합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이날 간담회에서 조사 결과가 어떻게 입증됐는지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자신의 피해 사실이 국가로부터 어떻게 규명됐는지 확인하는 순서다. 위원회는 진술조사, 실지조사, 기록조사를 통해 피해를 입증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군과 경찰에 대해 총 127회, 참고인에 대해서 71회 조사를 했고 이때 또다른 성폭력에 대해 제보를 받기도 했다. 실지조사는 4년 동안 48회 다녀왔다. 피해자의 동선을 확인하거나 주변 주민들을 탐문하기 위해 피해 현장을 찾았다.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당시에 없던 아파트나 도로가 생겨서 위치관계 파악이 어려울 때는 항공사진을 이용해 피해 장소 추정지를 나타낼 수 있었다.
현재도 성폭력 사건은 하루 이틀만 지나면 입증하기 어렵다. 40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던 방법 중 하나가 의료 기록이었다. 권하예 위원회 조사관은 의료 기록은 선생님들의 지난 40년 삶의 기록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6월 26일 활동을 마친다. 이후 피해자들이 지역사회 여성단체와 변호사 단체, 광주광역시와 시의회 등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는 것도 중요하다. 이들은 앞으로 국가를 상대로 한 정신적 피해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정다은 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이제 시의회, 변호사단체, 여성단체에서 여러 방면에서 여러분들 옆에 있겠다고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며 여러분들께서 5·18 역사를 위해 용기내 진술해주신 것처럼 보답을 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여성단체연합 젠더폭력특별대책위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광주전남지부)은 정서·심리적인 지원과 법률 지원을 할 계획이다. 이소아 변호사는 양측이 선생님들의 양쪽 손을 하나씩 잡고 가고자 하니 믿음을 주시고 적극적으로 따라와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개인의 아픔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다감 상담전문가는 선생님들이 아직 세상에 나가서 목소리를 내기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때까지 우리 손을 좀더 잡아달라고 했다며 선생님들이 해야 할 일을 할 것이고 피하지 않겠다고 하시니 좀 안내해주고 이끌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러분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빛나는지, 얼마나 멋진 인연들인지 말로 다 전할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참석자들은 다같이 춤을 추는 시간을 가졌다. ‘느룹나무 춤’으로 불리기도 하는 엘름댄스(Elm Dance)를 배우기 위해 참석자들은 이다감 상담전문가의 지도에 따라 팔과 다리, 손과 발을 움직였다. 5분여간 배우니 쉽게 출 수 있는 춤이었다. 엘름댄스는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 때 인간을 대신해 방사능비를 맞고 죽어간 느룹나무를 위로하며 평화를 기원하는 춤이다.
동그랗게 모인 뒤 음악에 맞춰 서로의 손을 잡고 오른쪽으로 계속 돌다가 마지막에는 다같이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버리자는 뜻으로 메고 있던 스카프를 공중으로 날렸다. 이남순씨는 너무 후련하고 시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세상에 목소리를 낼 계획이라고 했다. 이제 나이도 들었고 있었던 일을 알리려 해요.
5·18 성폭력 피해자들은 앞으로 ‘자조모임’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지순씨는 이제 목소리를 같이 내야 하니 5월 초나 중순에 같이 만나자고 제안했다.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다른 피해자들은 끝까지 같이 가요 우리는 무조건 같이 해야지라고 화답했다. 부상자회·유족회처럼 모임 이름을 고민해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이씨는 ‘치유’가 들어가는 예쁜 이름을 짓자고 말했다.
위원회는 조사를 거부했던 피해자들이나 감춰진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여성단체들에 연계할 계획이다. 윤경회 팀장은 위원회의 진상규명 결정은 시작이라며 고립되고 감춰졌던 피해자들이 세상에 나와 목소리를 낸다면 집단의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피해자의 증언이 첫 진상규명 조사를 이끌어냈듯이 개인의 증언이 위원회의 조사로 역사의 기록이 되는 것을 지켜본다면 가려진 피해자들을 공론장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성폭력 피해를 말하는 것이 당당한 권리라는 것을 위원회도 최선을 다해 전하겠다고 말했다.
▼ 임아영 젠더 데스크 겸 플랫팀장 layknt@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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