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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간 성범죄는 공교육의 실패”…‘사교육’에 기대는 ‘아동 성교육’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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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121회 작성일 24-05-0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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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간 성범죄 늘지만 ‘공공 성교육’ 부재로 부모 불안사설업체 강의 수강 증가…성교육도 빈부 격차 우려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아동 간 성범죄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아동 성교육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공공 영역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은 미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학부모들은 사설 성교육 업체로 몰리며 자구책을 찾는 실정이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세 살 남자아이를 키우는 A씨(31)는 얼마 전 한 사설 업체의 아동 성교육 강의를 수강했다. A씨는 아동 간 성폭력 등 아동을 둘러싼 성범죄 사건은 예전부터 꾸준히 있었다며 나이대별로 꼭 필요한 성교육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강의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A씨는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이 뻔한 내용이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며 나중에 추가로 돈을 들여서라도 사설 업체의 성교육을 수강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육아 카페 등 커뮤니티에서는 사설 성교육 업체의 소규모 강의를 함께 들을 참가자를 모집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학부모는 예전 방식의 소극적 성교육만으로는 요즘 아이들을 교육할 수 없다고 판단해 전문가를 섭외한다며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비용을 분담해 함께 하자는 내용의 글을 커뮤니티에 올렸다. 2시간 분량인 강의의 수강료는 25만원 정도다. 한 강의당 4~6명 가량이 모여야 강의가 열리는 식이다.
#128204;[플랫]40년 만에 금기를 깨다… ‘성교육’ 등장시킨 ‘딩동댕 유치원’
최근 연이어 벌어진 아동 간 성범죄 사건들은 학부모들의 불안을 부추겼다. 지난 15일에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초등학생이 다른 초등학생을 상대로 성추행을 하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7월에는 서울 강동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4살 여자아이가 또래 아동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건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건들이 공공영역에서 성교육이 실패했다는 걸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보고 있다. 공교육 하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은 의례적인 수준이라는 취지의 지적이다. 초·중·고교 학생들은 연간 15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성교육을 시행해야 하지만 교사의 의지가 없으면 형식적으로만 교육이 진행되기 쉽다. 최은경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부지부장은 교사 입장에서는 학부모나 보수단체의 성교육 반대 민원 등 부담이 있어 성폭력 관련 교육들은 초보적인 수준으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공공영역에서 적절한 성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사교육 업체로 학부모들의 눈이 쏠리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장경은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사교육으로 성교육 수요를 해결하게 되면 성교육도 빈부격차가 생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설 성교육 업체의 교육 내용들을 정부 차원에서 점검하기 어려운 점도 문제점으로 꼽는다. 교육부가 사설 업체의 교육 프로그램을 검증할 기준도, 명분도 없다는 것이다.
처벌만으로 아동 간 성범죄 재발을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처벌만으로는 재발 방지를 할 수 없다며 가해 아동이 성장하면서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교육을 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가해 학생을 교화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성교육 전문 강사인 박미애 가치소장연구소 소장은 근본적으로는 성교육이 부재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본다며 처벌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는 가해 학생들의 성 의식을 바꿀 수 있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시대에 맞춘 실질적인 성교육이 해결책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 교수는 아동 간 성범죄 가해자가 점점 저연령화되고 있고 빈도도 잦아지고 있다며 미디어 노출 등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 이를 분석해 어린 나이 때부터 적합한 성교육을 들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단순히 성행위와 관련한 기초적인 교육 내용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유네스코에서 제안한 국제 성교육 가이드라인을 참고해 서로의 경계를 인식하고 존중하는 경계 교육 등의 과정을 국가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 배시은 기자 sieunb@khan.kr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han.kr
치욕의 순간도 역사다. 수백년 전 꿈틀댄 제국주의 망령은 아시아 전역을 집어삼켰다. 태평양의 진주로 불리는 필리핀도 마찬가지다. 국명조차 스페인 황제였던 펠리페 2세에서 따왔다. 필리핀은 ‘펠리페의 나라’라는 뜻이다. 하지만 필리핀은 과거를 부정하는 대신 흉터를 끌어안고 자신만의 색으로 새살을 돋아내는 중이다. 거대한 용광로처럼 서구와 아시아의 문화를 녹여내며 동남아시아 허브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사실 필리핀을 찾는 많은 여행자가 ‘휴양’을 기대한다. 7000개가 넘는 섬을 품은 필리핀에 지상낙원으로 꼽히는 명소가 많아서다. 세계적인 보이그룹 BTS가 ‘서머패키지’ 화보집을 촬영한 곳도 필리핀 팔라완이다. 하지만 자연만 맛보고 간다면 필리핀의 ‘본캐’를 접하지 못하는 셈이다. 마닐라의 거대한 성벽 도시 ‘인트라무로스’에 들어서자 필리핀 근현대사 속으로 시간여행이 펼쳐졌다.
성벽은 보호를 위한 구조물이다. 성벽 안의 사람과 터전을 지키기 위해 세워진다. 하지만 마닐라의 성벽 목적은 다르다. 스페인이 필리핀을 독점적으로 착취하려 만든 식민주의 산물이다. 필리핀 땅을 ‘발견’했다고 자부한 스페인 탐험가는 루손섬 마닐라 일대를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의 땅이라고 규정했다. 10세기부터 이어진 이 땅의 원주민과 주변국의 교류는 무시됐고, 중국 해적을 막는다며 거대한 성벽이 건설됐다. 높이 6m의 성벽은 사실상 스페인이 식민지 경쟁을 차단하기 위한 요새였다. 필리핀은 이후 380여년간 스페인, 미국, 일본의 식민지로 상처의 역사를 살아냈다.
16세기 말 스페인 정복자들이 세운 성벽의 두께는 2~2.5m, 길이는 총 4.5㎞다. 내부 면적은 67㏊에 달한다. 스페인은 이 성벽 안쪽을 ‘인트라무로스’라고 칭했다. 스페인어로 성벽(muros)의 내부(intra)를 뜻한다. 스페인 식민 정부의 주요 기관은 물론 종교, 교육, 주거 시설이 인트라무로스에 들어섰다. 성벽 안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유럽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스페인 건축물이 즐비해 ‘작은 유럽’으로도 불린다.
인트라무로스의 흥망성쇠는 식민통치와 운명을 같이했다. 스페인 점령 시기 이곳은 동남아시아의 무역벨트로 성장했다. 마닐라 갤리언 무역선은 정기적으로 마닐라와 멕시코 아카풀코를 오갔다. 동남아의 향료, 멕시코의 은, 중국의 도자기, 인도의 보석, 중동의 양탄자 등이 마닐라에서 교류됐다.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지역까지 연결하는 국제 무역항이었다.
성벽에는 8개의 문과 9개의 보루가 있었다. 지금도 성안을 지키기 위해 사용했던 대포가 남아 있다. 미국 점령 시기를 거쳐 1941년 일본이 인트라무로스를 차지했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에 휩싸였다. 3개의 문은 아예 사라졌고 성벽의 60%가 붕괴됐으며 도시 조직의 95%가 파괴됐다. 1946년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필리핀 정부는 식민시대 상징인 인트라무로스를 폐허로 남기는 대신 복구하기로 결정했다. 1951년 국가 사적지로 지정한 뒤 개발과 복원을 진행했다. 이제 시민들은 대포가 놓인 보루 위에 앉아 마닐라를 내려다보며 휴식을 취한다.
필리핀 사람들은 인트라무로스를 ‘올드 시티’라 불렀다. 구도심이라는 뜻과는 달리 인트라무로스에 들어서자 젊음의 열기가 가득했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삼삼오오 거리를 채웠고, 젊은 연인들은 성곽에 앉아 데이트를 즐겼다. 인트라무로스가 마닐라의 학문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산토토마스대학교 캠퍼스도 1611년 이곳에 세워졌다. 지금도 마닐라 인트라무로스시립대학교를 비롯해 필리핀 명문대들과 마닐라를 대표하는 고등학교들이 올드 시티에 있다. 학생들은 성벽 안팎을 넘나들며 학문을 익히고 학창 시절의 추억을 쌓는다.
스페인은 가톨릭의 씨앗을 이곳에 뿌렸다. 인트라무로스 안에는 무려 8개의 성당이 세워졌다. 현재 필리핀 국민 83%가 가톨릭 신자다. 중앙 광장인 플라자 데 로마 앞에는 마닐라 대성당이 있다. 1571년 처음 지어졌지만 화재, 지진, 전쟁 등으로 여러 차례 파괴됐다가 1958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양쪽으로 과거 시청 건물과 옛 총독 관저가 위치했다. 함께 인트라무로스 산책에 나선 메리어트호텔 마케팅 디렉터 아치 니카시오는 마닐라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하려고 기다리는 커플들이 많다면서 인트라무로스 안에는 성당과 학교, 유적지와 맛집이 포진해 있어 시민들도 자주 찾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마닐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도 이곳에 있다. 1607년에 완공된 산 아구스틴 교회는 2차 세계대전 포격과 이후 대지진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기적의 교회’로 불린다. 스페인 황금시대를 그대로 재현해 웅장하고 화려하다.
유리 대신 조개를 끼워 만든 창문, 파인애플을 모티브로 한 바로크 양식의 강단, 그랜드 파이프 오르간, 16세기 십자가와 파리에서 온 거대한 샹들리에 세트 등 구석구석 볼거리도 많다. 교회 옆에 산 아구스틴 박물관에는 필리핀 가톨릭 역사를 알 수 있는 전시물들이 마련돼 있다.
과거 상류층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카사 마닐라도 둘러보면 좋다. 식민시대 필리핀 상류층의 저택을 박물관으로 꾸몄다. 스페인 양식 건축물 내부는 침실, 거실, 서재, 파티룸 등으로 꾸며졌다.
필리핀 상류층들이 사용한 가구와 소품 등을 그대로 전시해 화려했던 과거를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부유한 삶을 누린 건 극히 일부였다. 대다수 민중은 강제노동에 시달리면서 수탈당했다. 높은 세금, 강제노역, 강제개종 탓에 끊임없이 민중 봉기가 일어났다.
인트라무로스 인근에서 필리핀의 독립 정신도 만나볼 수 있다. 스페인의 압제를 폭로한 필리핀 국부 호세 리살을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기리는 리살 공원이 지척이다. 58만㎡ 면적에 울창한 야자수가 그늘을 만들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다. 하지만 사실 이곳은 호세 리살이 1896년 스페인에 처참하게 처형당한 곳이기도 하다. 영어교사이자 통역가인 파트리샤 그레이스는 필리핀의 역사는 슬픔 그 자체였다면서 평화적인 민중운동을 펼친 호세 리살조차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지만 필리핀 사람들은 신앙을 전해준 스페인의 통치 역사도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아시아 국가면서도 영어를 사용하고 가톨릭을 마음에 품은 필리핀의 정체성은 이중적이면서 독특하다. 새벽 희미한 어둠 속 작은 불빛이라도 있어야 한다면 나의 피를 흩뿌려 어두운 새벽 더 밝히리라는 호세 리살의 마지막 인사처럼 인트라무로스에서 시작된 불빛은 ‘동남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도시’ 마닐라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주간경향] 철강, 석유화학, 전기차, 알리까지….
중국산 초저가 제품이 쏟아지면서 중국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수출’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내수 침체 속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중국이 덤핑(물품이 정상가 이하로 수입되는 것) 공세로 재고를 밀어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의 기간산업인 철강업종에서는 중국이 자국 내 남아도는 철강을 저가로 수출하면서 세계적으로 1억t가량의 공급 과잉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이에 각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잇따라 관세 장벽을 세우고 있다.
칠레는 지난 4월 22일 중국산 철강에 최대 33.5%에 달하는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반덤핑 관세는 수입제품의 정상가격과 부당한 할인가격의 차액만큼 부과된다. 앞서 칠레 철강회사들은 정부 보조금을 업은 중국 철강제품이 저렴한 가격에 대량 수입되자 조업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칠레 정부의 결정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 철강에 대한 평균 관세를 기존보다 3배 이상 인상한 25%로 할 것을 미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한 뒤 나왔다. 이를 계기로 중국 철강에 대한 각국의 대응이 확산할지 관심이 쏠린다.
대표적인 친중 국가인 브라질도 중국 철강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 외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도 밀려드는 중국 철강에 골머리를 앓고 있어, 각국이 무역장벽을 높이면 길 잃은 물량이 한국으로 대거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 국내에서도 포스코, 현대제철 등이 중국산 철강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
■ 중국 덤핑 공세에 석화업계 구조조정
철강과 더불어 한국의 주요 수출 종목이었던 석유화학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석유화학업계는 중국 기업들의 증설로 인한 공급 과잉과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 둔화로 고전하고 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지난 4월 9일 저가 공세를 이어가는 중국산 스티렌모노머(SM)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나섰다. SM은 가전에 들어가는 합성고무 등을 제조하는 데 쓰이는 석유화학 원료다. 국내업계 1·2위인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이미 일부 공장 가동을 멈추고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인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에선 소비재가 밀려들고 있다. 중국 제조사들이 이커머스를 통해 재고를 초저가에 떨이로 팔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전기차와 배터리 등 미래 먹거리에서도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다. 산업계 안팎에서는 중국의 디플레이션 수출로 ‘제2의 차이나 쇼크’가 오고 있다고 우려한다.
1차 차이나 쇼크는 중국이 개방 물결을 타고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생긴 무역 시장의 변화를 뜻한다. 중국 공산품이 저가로 쏟아지면서 세계 물가가 내려가고 각국에서는 중산층의 구매력이 커지는 효과를 누렸다. 대신 중국산에 밀려 경공업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해당 기간 선진국은 산업 구조 재편을 통해 정보기술(IT)과 반도체, 인공지능(AI) 등의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했다.
이번 2차 차이나 쇼크는 양상이 다르다. 1차 때는 중국이 호황이라 각종 원자재를 대규모로 수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불황이라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세계 각국이 만든 상품을 중국에 수출할 여지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작년 대중 수출이 급감하면서 1992년 수교 이후 처음으로 중국에 무역적자를 냈다.
중국의 산업구조도 바뀌었다. 전기차, 배터리, 석유화학 등 한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주요 산업에서 저가의 중국 제품이 쏟아지고, ‘대륙의 실력’을 보여주는 상품도 등장해 세계시장을 긴장시키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자증권 연구원은 대륙의 실력을 바탕으로 한 제품과 경쟁하는 세계 주요 첨단기업들이 1차와 다른 차이나 쇼크에 직면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가 위안화 약세를 일정 부분 용인하면서 자국산 제품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산업현장 곳곳에서는 위기감이 감돈다. 독일의 중국 연구기관인 메릭스는 ‘메이드 인 차이나 2025’라는 보고서를 통해 제조업 의존도가 높고 첨단산업 비중이 높은 한국과 독일 등이 중국 전략에 가장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미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중국 브랜드 로보락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주도하는 국내 가전 시장에 진출해 로봇청소기 부문에서 2년째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150만원을 웃도는 최상위급 로보락은 먼지 흡입 후 걸레로 닦고, 걸레를 빨아 말리는 ‘올인원 기술’이 특징이다.
국내 전기버스 2대 중 1대는 이미 중국산이다. 중국 전기차 기업인 비야디(BYD)는 지난해 말 기준 테슬라를 제치고 판매량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커머스 분야의 침투 또한 만만치 않다. 알리의 모회사인 알리바바그룹은 물류센터 건립을 위해 한국에 1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예고했다. 유통업계에서는 해외 시장으로 접근성이 좋은 한국을 ‘디플레이션 수출’의 전초기지로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 중국 고부가가치 산업도 미국 추월
중국은 첨단기술 부문에서도 한국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올해 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요 5개국의 국가 핵심기술 수준을 분석한 ‘2022년도 기술 수준 평가’ 에 따르면, 1위인 미국을 100%로 봤을 때 중국은 82.6%로 한국(81.5%)을 앞섰다. 중국이 한국을 앞선 건 2012년 조사 이래 처음이다.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면서 서방 국가가 견제에 나선 것도 1차 때와 다른 모습이다. 전기차, 2차전지, 태양광 판매는 중국이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분야다. 이미 유럽을 평정한 중국산 태양광 패널은 미국 시장 접수를 앞두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중국 제품의 가격이 저렴한 데에는 중국 정부의 지원이 있다고 보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저렴한 공장 용지를 제공하고, 각종 정책 보조금과 특혜 융자를 쏟아부은 결과라는 것이다.
주요 국가들은 자국 산업과 일자리 붕괴를 우려하며 규제에 나섰다. 단기적으로는 저가 제품이 소비자 입장에선 좋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과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EU는 오는 7월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를 부과한다. 아울러 태양광 패널 등 광범위한 제품에 수입 제한과 고율의 관세 부과를 검토 중이다. 인도는 지난해 9월부터 중국산 철강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친중 국가인 브라질도 철강, 화학제품 등 최소 6개 분야에서 반덤핑 조사를 하고 있다. 각국이 준비하는 규제 중에는 한국 산업에 영향을 미칠 방안도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 EU는 2026년부터 수입 제품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수치화해서 배출량이 많을수록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 조정 메커니즘(CBAM)’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이영원 흥국증권 연구원은 한국은 전력 생산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이 높은 편에 속하고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에 기반한 전력 생산 비중이 세계 평균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이라며 전력 생산에 따른 탄소배출량을 두고 부담이 상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미·중 패권 경쟁 격화 속 한국 대비 필요
중국은 반발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과 EU 등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국 기업을 지키려는 보호무역주의 정책의 구실로 삼고 있다며 중국의 수출 확대는 다른 나라 소비자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물가 인하로 세계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데도 중국을 깎아내리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는 보호무역주의가 쟁점으로 부상해 바이든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통상 정책을 놓고 선명성 경쟁을 벌이고 있다. 향후 미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중국과 미국 간 무역전쟁이 격화될 공산이 커 한국으로선 선제 대비가 필요하다.
산업계 관계자는 원재료 공급망을 쥐고 있는 중국이 미국 등의 반덤핑 공세에 보복 조치를 예고해 기업들에도 간접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중국이 잘하는 산업 품목과 (국내 기업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차별화된 초격차 전략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 분쟁이 단순한 무역·통상 분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패권 경쟁이 될 것으로 보고 양자택일식 논리를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을 규제할수록 장기적으로 미국에도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한국은 양국 사이에서 상인의 정신과 외교적 기술로 전략적 중립을 유지하며 줄타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기술의 굴기로 낙후되는 산업들을 경쟁력이 있는 쪽으로 옮겨주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산업별 구조개편은 교육 등의 투자가 필요한 만큼 정부가 첨단 산업 육성에 대한 큰 로드맵을 갖고 산업별 구조조정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대체 시장 육성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 저자 한청훤 작가는 내수 경기 불황 등에 따른 중국 경제 문제는 앞으로 더 악화할 가능성이 커 그에 따른 부작용을 대비해야 한다며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축소하면서 인도와 동남아 등 기업이 중국을 대체할 시장을 찾을 수 있도록 외교력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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