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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총선 앞에 “R&D 아픔 줬다”는 정부, 사과하고 바뀔 것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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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37회 작성일 24-04-05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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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이 3일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 R&D 예산이 대폭 삭감된 데 대해 연구자들에게 아픔을 드린 것도 사실이라고 몸을 낮췄다. 윤석열 정부가 사과하고 바뀔 게 이것뿐이겠는가.
정부는 지난해 6월 윤 대통령의 ‘나눠먹기식 R&D 사업 원점 재검토’ 지시 후 33년 만에 처음 R&D 예산을 삭감했다. 곳곳에서 연구 인력 감축과 기존 연구 파행·축소까지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대통령실은 이날 내년에 대폭 증액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라고 했는데, 전 세계 기술 경쟁은 올 들어 갑자기 심화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절체절명의 상황’은 목전에 다가온 4·10 총선에서 여당 패배 위기감을 말하는 건가. 대통령실 관계자가 익명으로 R&D 삭감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걸로 끝날 일도 아니다. 윤 대통령이 반성하고 사과하는 게 먼저다.
윤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부쩍 민생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고물가 관리와 민생 정책 실패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윤 대통령은 관권선거로 비친 24차례 민생토론회에서 토건 개발 약속을 쏟아냈다. 비용만 어림잡아도 수백조원이다. 윤 대통령은 민생토론회 현장에서 제기된 민생 과제에 대한 해법을 담아 예산안을 편성하겠다고 했다. 그래놓고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재량지출을 10% 이상 줄여 건전재정 기조를 고수하겠다고 했는데, 수백조원은 그런 구조조정으로 가능한 규모가 아니다. 총선이 급하다고, 앞뒤 맞지 않는 얘길 막 던지고 있는 것이다.
선거 앞에 맘 급한 건 정부 부처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이 전날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효과적인 정책 홍보 방안을 찾아 달라고 주문했다. 그러자 하루 만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여전히 혼란 속인 초등학교 늘봄학교가 한 달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만에 100곳 정도 늘었다는 자화자찬식 성과를 발표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이날 맹견사육허가제 등을 담은 ‘반려견 안전관리 강화 세부대책’을 내놨는데, 지난 2월 ‘동물보호법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며 설명했던 재탕 자료다. 이래놓고 아직도 정책 홍보가 되지 않아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 개탄스럽다.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불통·독주로 일관한 국정운영 자체에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자신의 책임에 대해선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민 눈높이에 부응하겠다면 국정운영 기조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그 출발은 진지한 성찰과 진솔한 사과여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국정 운영은 순항할 수도 지속 가능할 수도 없다.
태조 왕건은 고려의 다른 국왕과는 위상이 완전히 다르다. 시조라는 점 때문만이 아니라 고려 400여년 동안 반신반인 정도로 숭배를 받던 존재라 그렇다. 예를 들어 고려의 양대 축제라는 연등회와 팔관회는 태조 왕건에게 고하는 것으로 의례를 시작한다. 수도인 개경만이 아니라 지방 곳곳에 그 초상을 모신 진전이 있었고, 전쟁이나 지방의 반란 진압 같은 큰일이 있을 때면 이러한 진전에서 일이 잘되기를 기원하곤 했다.
왕건으로 이어지는 왕실 조상의 혈통도 신비화되었다. 건국 설화에는 당대 유행한 온갖 요소를 다 집어넣었다. 그래서 태조의 조상 중에는 산신도 있고, 명궁수도 있으며, 오줌 꿈을 꾼 할머니, 심지어 당나라 황제와 용왕의 딸도 있다. 또 도선만이 아니라 팔원이라는 풍수사까지 그 집과 그 고을의 풍수를 봐주며 왕업의 개창을 예언했다. 궁예처럼 미륵이라고 하지만 않았을 뿐 나머지 유행하던 요소는 다 넣었고, 고려 왕실은 용손을 자처했다. 왕권이 위태로울 때면 이런 혈통적 신비함에 기대는 이들이 더욱 극성했다. ‘태조가 시작했다’든가 ‘태조가 예언했다’는 등의 딱지가 붙은 일들이 늘어나고, 목전의 일들은 회피한 채 신비한 효과를 노리는 일들만 벌이는 경우가 많았다. 땅의 덕을 보완한다는 궁궐이 늘어나고, 새롭게 연 절, 거창한 행사가 많아졌다. 권력의 꼭대기에서 그런 사업을 좋아하니, 그런 종류를 찾아내서 건의하며 출세하는 사람들도 무성했다.
정작 왕건은 자신이 인간이라는 점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는 병세가 깊어지자 천하의 온갖 사물이 태어나면 다 죽는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것이 천지의 이치라며 태자에게 정치를 일임했다. 그 며칠 후 유조(유언으로 남기는 조서)를 불러주다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니, 신하들은 왕이 죽은 줄 알고 목 놓아 울었다. 그러자 웃으면서 인생이 원래 덧없는 것이다라고 하고는 잠시 후 세상을 떠났다. 왕건은 신격화를 거부하고 사람으로서의 삶과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왕건은 왕위 역시 이런 신성성이나 혈연의 특별함에만 기댈 수 없다는 점을 잘 알았다. 왕위 계승의 원칙을 담은 훈요 제3조에서, 그는 맏아들의 자질이 모자라면 그다음 아들, 그다음 아들도 안 되겠으면 추대를 받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라고 했다. 그러면서 요 임금이 순 임금에게 선양한 일, 즉 자기 자식이 아닌데도 왕위를 물려준 일을 언급했다. 요 임금이 그렇게 한 것은 바로 ‘공심’ 때문이었다고 말이다. 여기에서 ‘공심’은 요즘 말로는 여론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혹은 권력을 공적으로 여기는 마음이라고도 풀이할 수 있다. 어느 쪽이건 혈통에 의한 세습 왕조를 세웠음에도 왕위라는 것이 내 맘대로 막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1100년 전에 말이다.
그러나 고려 말, 어리석게도 이러한 ‘공심’에 대한 시조의 경고는 무시한 채, 국왕들은 엉뚱한 방향으로 시조를 계승하겠다고 몰두했다. 공양왕은 연복사라는 큰 절을 짓고 연못 세 개와 우물 아홉 개를 파면 중흥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임금이 이런 일에 몰두할 때 아래에서는 뇌물이 횡행하고 아무나 관직을 얻었으며, 옳고 그름 따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라면 사람들이 이런 권력의 현란한 아우라에 현혹될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루하루의 일상이 그 권력의 효용과 공정함을 확인하고 평가하게 되어 있다.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 신성함의 아우라에만 기대려 한 고려 왕실은 결국 망했다. ‘친분으로 사사롭게 관직을 주면 아랫사람들이 그 사람을 원망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오래갈 수가 없다’고 한 훈요 9조의 엄중한 경고는 왕건이 수십년간 죽을 위기를 거쳐가며 나라를 세우면서 피부로 절감한 ‘공심’에 대한 이야기다. 1100년 전에도 무섭던 ‘공심’, 21세기에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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