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의 불편한 진실]선진국과 비교해 본 한국의 갈라파고스 대입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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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145회 작성일 24-03-19 09:57본문
프랑스도 오랫동안 대입시험(바칼로레아)만 활용했다. 그러다 2021년 내신성적을 10% 반영하도록 바꿨다. 과거에도 내신성적을 반영하려다가 학생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는데, 반대 이유는 ‘어떤 교사에게 배웠냐에 따라 대학 입학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크롱 정부가 학생들의 반대를 뚫어냈다.
내신성적에도 나름의 장점이 존재한다. 수행평가를 통해 대입시험보다 폭넓은 역량을 평가할 수 있다. 특정 ‘시점’의 성취도를 측정하는 대입시험과 달리 일정 ‘기간’ 동안의 과정, 예를 들어 개인별 연구주제에 대한 탐구활동 같은 것을 담아낼 수도 있다. 이 같은 장점을 고려하여 대입시험과 내신성적을 합산하여 활용하는 나라들이 많다.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호주 등이다. 미국도 내신성적과 대입시험을 모두 반영한다. 최근에 대입시험(SAT·ACT)을 요구하지 않는 대학이 늘었지만, 명문대는 여전히 대입시험을 반영하며 여기에는 AP(대학 학점 선이수) 시험도 포함된다. ‘학점 선이수’라는 명목이 붙어 있지만 사실상 대입시험 역할이다.
대입시험 없이 내신성적만 활용하는 나라로 캐나다와 노르웨이를 꼽을 수 있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OECD 가입국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전체를 통틀어 대입시험이 없는 예외적인 두 나라다. 내신성적은 학교별 편차가 클 수도 있으므로, 캐나다에서는 내신성적을 매길 때 주(州) 단위 학업성취도 평가 성적을 일정 비율 반영하기도 한다.
북유럽 국가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핀란드는 내신성적 없이 대입시험만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원래는 거의 대학별 본고사만 반영했는데(핀란드는 일본과 더불어 본고사가 폭넓게 치러지는 드문 경우다) 2020년 대입제도를 바꿔서 본고사로 정원의 40%가량을 선발하고 대입자격시험으로 나머지 60%를 선발한다. 여기서 대입자격시험이란 프랑스(바칼로레아), 독일(아비투어), 영국(A레벨) 등과 유사한 과목별 논술형 시험이다. 본고사 전형도, 대입자격시험 전형도 지원자를 성적순으로 선발한다.
스웨덴에서는 내신성적만으로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내신성적에 불만이 있거나 25세 이상이면 대입시험에 응시한다. 모든 학과에서 대입시험만으로 정원의 30% 이상을 선발하게 되어 있고, 나머지는 내신성적으로 선발한다. 어느 쪽 전형에 지원할지는 지원자 개인 재량이다.
노르웨이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내신성적만 반영한다. 덴마크도 얼핏 내신성적만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학교별로 일부 학급에서 표집용 대입시험을 치른다. 즉 덴마크에서 대입에 활용되는 성적은 일반적인 의미의 내신성적이 아니라 ‘표본집단이 치른 대입시험 성적을 통해 보정된 내신성적’이다.
한국의 ‘객관식 시험’은 희귀 사례
유사한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가진 북유럽 국가들도 이렇듯 대입제도가 서로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 국가에서는 대입시험과 내신성적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활용한다는 일관성이 보인다. 이 두 가지 외에 비교과(extracurricular) 활동 등 폭넓은 개인적 경험을 대입에 반영하는 나라는 드물다. 자기소개서와 추천서를 보편적으로 요구하는 나라는 미국과 영국뿐이다. 그중에서도 영국은 성적을 보다 중시하여 비교과의 비중이 비교적 작지만, 미국은 비교과의 영향력이 크다.
한국에서는 성적만으로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편협하므로 그 밖의 여러 가지 요소를 활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러면서 ‘한줄 세우기’가 만악의 근원인 것처럼 치부된다. 입학사정관제 및 학생부종합전형이 나타난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였다. 하지만 이는 미국에서 유래한 담론의 영향일 뿐, 선진국 전반적으로는 예외적인 것이다. 비교과를 기피하는 이유는 기회불평등의 문제라든지 선발과정의 번거로움 때문일 것이다.
선진국의 대입시험은 논술형 문항이 주류다. 객관식은 드물고 영향력이 작다. 객관식 대입시험은 미국, 일본, 스웨덴에 존재한다. 미국의 SAT·ACT는 연중 여러 번 치러지고 시험 시기와 횟수가 학생 재량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이를 대비하는 수업을 해주기가 불가능하다. 즉 객관식 시험이 고교 교육에 미칠 영향이 차단되어 있는 것이다. 미국 고교에서 내신 평가는 객관식이 아니라 주로 논술형·서술형이거나 수행평가다. 일본은 객관식 대입시험인 공통테스트(옛 센터시험)가 있지만 주요 대학에서 치르는 본고사에 비해 영향력이 훨씬 작다. 스웨덴의 객관식 대입시험은 지원자의 일부만 치르는 시험이다. 반면 한국은 객관식 대입시험이 공교육에 지배적 영향력을 미치는 희귀한 사례다. 참고로 선진국 이외의 OECD 가입국들 중 대입시험이 객관식인 나라는 칠레, 멕시코, 콜롬비아, 튀르키예다.
한국에서는 흔히 고교에서 ‘입시 교육’을 하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여기는데, 이것은 미국의 영향이다. 유럽 각국에서는 학교에서 대입시험을 준비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문항이 논술형으로 ‘오지 탐험 여행을 소개하는 기사를 작성하라’(국어)거나 ‘전쟁이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명제에 대하여 논하시오’(역사)와 같은 문항이 나오다 보니 대입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글을 읽고 쓰고 토론하는 것이다.
상대평가로 ‘학생 선호과목’ 기피
한국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은, 다른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상대평가가 두루 쓰인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학업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이 선호하는 과목은 기피 대상이 되어버리는’ 역설이 벌어진다. 지난해 치러진 수능에서 경제 선택자 및 물리학2 선택자가 1%에 불과했다는 점, 한동안 제2외국어 응시자의 무려 70%가 아랍어를 선택한 점 등이 상대평가의 이러한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상대평가는 ‘합리적 과목 선택’을 치명적으로 방해하는 것이다.
선진국의 대입시험이나 내신성적에서 활용하는 성적체계는 원점수 및 절대평가 등급에 더하여 보정점수(scaled score)나 보정등급(moderated grade)까지 4가지다. 보정하는 목적은 출제 난이도의 편차를 균등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 화학 시험이 (다른 과목보다, 혹은 지난해보다) 어렵게 출제되었으면, 점수나 등급을 올려주는 방향으로 보정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다른 과목 성적과 공평한 비교가 가능해지고, 내년에도 이 성적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많은 선진국에서 올해 치른 대입시험 성적을 내년에 활용할 수 있다). 이 같은 보정은 상대평가라고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표준점수처럼 과목별 최고점이 달라진다든가 석차등급처럼 모든 과목 평균이 똑같이 나오는 불합리가 없다. 당연히 ‘경제 기피’나 ‘아랍어 쏠림’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은 예방된다. 최근 정부는 마땅히 가야 할 이 방향을 묵살하고 선택과목을 없애버리는 황당한 수능 개편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의대 정원, ‘좋빠가’에 맡길 것인가
정시의 종말
친명과 친문에게
내신성적을 상대평가로 매기면, 앞에서 이야기한 상대평가의 보편적인 문제에 더하여 치명적 결함이 하나 추가된다. 소그룹 내에서 ‘제로섬 경쟁’을 하다 보니, 옆에 앉은 친구도 경쟁자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만큼 체감 경쟁 강도가 높고 상호 협력을 어렵게 만든다. 그런데 이것이 가진 희한한 효과가 있다. 지역별 학력 편차가 무시되는 것이다. 평균 학력이 높든 낮든 상관없이 똑같은 비율로 석차등급이 부여되므로, 이를 대입에 반영하면 지역별로 골고루 뽑히는 ‘균등 선발효과’가 생긴다. 학종 입학자가 정시(수능) 입학자에 비해 고소득층·수도권·강남 비율이 낮은 이유는 바로 학종에 내신성적이 반영되어 균등 선발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국 대입을 둘러싼 미신의 상당 부분은 미국을 출처로 한 것이다. ‘한줄 세우기’나 ‘성적순 선발’, 나아가 ‘고교에서 입시 교육’이 이뤄지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것 등이 모두 미국에서 유래했다. 미국 외의 선진국들을 살펴보면 많은 나라에서 성적순 선발을 볼 수 있고, 특히 대입시험이 논술형인 유럽 국가들에서는 고교에서 입시 교육이 이뤄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한국은 이렇듯 미국에서 유래한 미신을 믿으면서도, 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상대평가를 버젓이 실시하고 있다. 실로 갈라파고스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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