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사각형 때문에 망할 뻔한 엔비디아가 ‘킹비디아’가 된 이유 [세상의 모든 기업: 엔비디아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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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144회 작성일 24-03-10 00:48본문
30여 년 전만 해도 엔비디아는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던 망하기 직전의 회사였다. 1993년 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 LSI로직 등 잘 나가던 반도체 회사를 나온 커티스 프림과 크리스 말라초프스키, 젠슨 황은 게임 그래픽을 지원하는 장치를 만드는 엔비디아를 창업했다. 첫 제품이 그래픽과 사운드(음향)를 지원하는 ‘NV1’이었지만 겨우 1000개 팔렸다. 당시 시장에 공급한 25만개 중 안팔려서 반품된 게 24만9000개에 달했다. 이 제품은 그래픽과 사운드 각각의 성능이 월등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가격이 저렴한 편도 아니었다.
당시 엔비디아는 사각형 폴리곤(3D그래픽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으로 3D 효과를 내고, 기술적으로는 포워드 텍스처 매핑(Forward texture mapping)이라는 기술을 활용하고 있었다. 또 일본의 세가의 지원을 받으며 세가의 게임 콘솔 ‘세가 새턴’의 다음 제품에 들어갈 ‘NV2’를 개발 중이었다. 당시 세가 새턴용 3D 게임이었던 버추어 파이터나 툼 레이더, 버추어 캅 등을 보면 캐릭터나 배경을 구성하는 폴리곤이 사각형으로 이뤄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세가의 차기작에 들어갈 NV2 역시 사각형 폴리곤과 포워드 텍스처 매핑을 지원하는 제품이었다.
문제는 당시 3D 그래픽의 대세가 삼각형 폴리곤과 역 텍스처 매핑(Inverse texture mapping)방식으로 기울고 있었다는 것. 특히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PC 운영체제(OS)인 ‘윈도’에서 3D 그래픽을 담당하는 다이렉트X(다이렉트 3D)에 삼각형 폴리곤만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엔비디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시 상황에 대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세콰이어캐피탈 팟캐스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선택한 아키텍처는 당시에는 영리했지만 완전히 잘못된 아키텍처였죠. 1995년이었습니다. 우리가 세가와 함께 게임 콘솔을 완성하고 계약을 이행했다면, 잘못된 아키텍처를 개발하는 데만 2년을 소비했을 겁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이 새로운 세계에서 앞서가고 있겠지요. 하지만 세가와의 계약을 완료하지 못하면 돈이 부족해집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끝내고 죽느냐, 아니면 프로젝트를 끝내지 못하고 바로 죽느냐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엔비디아는 세가와 결별하고 NV2를 폐기한다. 세가의 자금 지원도 받지 못하게 됐고, NV1와 NV2까지 실패했다. 당장 회사 문을 닫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엔비디아는 당시 직원 100명 중 절반 이상을 해고하고 남은 돈 다 털어 삼각형 폴리곤과 역 텍스처 매핑을 지원하는 새로운 그래픽 카드를 만든다. 이렇게 나온 ‘리바 128’은 출시 4개월 만에 100만개 팔리는 성과를 냈다.
이 때부터 젠슨 황은 직원 프리젠테이션 때마다 우리 회사는 30일 후에 사업을 접습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30일 뒤 폐업할 수도 있다는 각오로 절박하게 일하자는 말이다.
엔비디아가 두 번이나 실패했는데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바로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반도체 생산공장(팹)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인텔, AMD 등 대부분의 반도체 회사들은 팹을 갖고 있었다. 반도체 설계부터 제작까지 자체 운영하는 이런 회사를 종합반도체업체(IDM)라고 부른다. 다만 반도체 제작 공정에는 상당한 자금이 들어간다. 먼지 하나 없는 클린룸에, 반도체 웨이퍼에 회로를 그려넣는 노광기 같은 각종 반도체 장비 등 설비를 들이는데만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 이렇게 만든 반도체가 시장성까지 없다면 그만큼 리스크도 커진다.
다행히 1980년대 말~1990년대 반도체 업계에는 ‘파운드리’라는 새로운 분야가 나타났다. 파운드리란 설계를 해서 건네주면 대신 생산해주는 위탁생산 공장을 말한다. 특히 1987년 대만의 TSMC가 반도체 파운드리 산업을 개척하면서 팹이 없는 반도체 설계회사(팹리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갖고 팹리스를 창업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엔비디아와 퀄컴이 대표적이다.
결국 엔비디아는 1990년대부터 본격화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글로벌 반도체 분업 구조가 만들어낸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당시에도 반도체 업계에서는 진짜 남자라면 팹을 갖고 있어야 한다라고 공공연히 떠드는 이도 있었다. 바로 AMD의 창업자인 제리 샌더스. 하지만 AMD도 제리 샌더스가 물러난 뒤 팹을 팔기 시작해 2009년부터는 완전히 팹리스로 전환했다.
리바 128의 성공 이후에도 엔비디아는 그래픽 카드의 만년 2인자 신세였다. 그러다가 1999년 엔비디아가 ‘지포스 256’를 출시하면서 업계 판도가 달라졌다.
게임에서는 캐릭터의 움직임에 따라 좌표도 바뀌고 광원의 위치, 픽셀의 밝기 등이 달라진다. 그동안 PC에서 이런 연산은 중앙처리장치(CPU)가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수행하고 그래픽카드는 보조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포스 256은 이런 연산을 직접 수행한다. CPU는 코어에서 복잡한 연산을 하나씩 수행하지만, GPU는 코어가 많아 그래픽 처리에 필요한 간단한 연산(행렬 곱)을 동시에 빠르게 수행할 수 있다. 지포스 256부터 그래픽카드는 그래픽처리장치(GPU)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됐다.
다만 지포스 256 출시 이후 수 년 동안 GPU는 게임에서만 활용됐다. GPU의 연산력을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시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대학원생이던 한 게임광도 이 같은 생각을 했다. 지금은 엔비디아 부사장이 된 그가 주도한 프로젝트 덕분에 GPU는 인공지능(AI) 학습용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 이 게임광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룬다.
경향신문 공식 유튜브 채널 ‘경향티비’의 <세상의 모든 기업>에서는 엔비디아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경향티비 <세상의 모든 기업: 엔비디아①> 영상 링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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