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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사과 한 알에도 손 떨리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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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157회 작성일 24-03-1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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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라가 선진국이고, 어떤 나라가 개도국일까. 여러 판단 기준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서민물가를 본다. 아무리 살인적인 물가의 나라라고 해도, 통상 선진국에서는 농축산물과 가공식품, 공산품 등 서민들이 소비하는 생활필수품은 저렴하다.
요즘 마트에서 파는 사과 한 알 가격이 5000원쯤 한다. 이게 사과야 수박이야,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원체 가격이 세다 보니 사과 한 알을 포장한 상품도 나온다. 어릴 적 겨울을 앞두면 부모님은 나무 궤짝에 담긴 사과 한 상자를 다락방에 넣어주시곤 했다. 입이 심심할 때마다 꺼내 베어물던 아삭했던 그 사과가 이렇게 비싼 과일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사과만 그런 게 아니다. 귤도 딸기도 토마토와 배도 과일처럼 생긴 것들은 죄다 비싸다. 연봉 1억원이 넘는 가구도 과일을 사먹으려면 부담스럽다고 한다. 이쯤되면 과일은 들었다 놨다가 아니라 그냥 외면하게 된다. 체감만 그런 게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월 사과 가격은 1년 전보다 71%나 올랐다. 귤은 78.1%, 배는 61.1%, 토마토는 56.3% 올랐다. 신선식품 전체로는 32년 만에 가격이 최대 폭을 뛰었다.
정부는 과일값 폭등의 주범으로 이상기후를 꼽고 있다. 지난해 봄철엔 냉해로 착과(열매가 매달리는 것)가 안 됐고, 여름엔 집중호우와 고온이, 가을에는 병충해와 잦은 우박이 겹치면서 생산량이 급감했다는 것이다. 절반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절반은 틀렸다.
과일값이 비싼 데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과일을 생산할 땅이 줄어들고 있다. 재정당국을 출입할 때 흔히 들은 말이 비싼 땅에 웬 농사냐다. 한국의 인스타 좋아요 구매 높은 땅값을 감안하면 그 땅에 부가가치가 낮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얘기였다. 농촌에 지원할 돈으로 차라리 농산물을 인스타 좋아요 구매 전부 수입해 오는 게 낫다는 말도 들어봤다.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재정관료 생리상 농촌 지원은 투자가 아니라 지출에 가까웠다. 양곡관리법을 재정당국이 기를 쓰고 반대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 같은 시각은 땅에 대한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농사 대신 공장을 짓자는 논리로 이어진다. 대규모 농토가 훼손되고 산업단지들이 들어서는 논리적 배경이다. 개발을 통한 성장을 강조하는 보수정권에선 이런 움직임이 더 노골적이 된다. 정부는 최근 그린벨트를 대폭 해제하겠다고 했다. 산업단지 규제는 완화하겠다고 했다. 그 결과 농지는 훼손되고, 규제도 덩달아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경지면적은 2013년 이후 11년째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의 ‘2023년 경지면적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전국 경지면적은 전년보다 1.1%(1만6092㏊) 감소했다. 여의도 55개에 달하는 면적이다. 경지가 사라진 땅에는 주택, 공장 등 건물과 도로 등을 건설했다. 화성, 용인, 김포, 평택, 남양주, 파주 등 경기지역의 논 감소는 지도를 바꿀 정도다. 그 많던 경북 경산의 포도밭, 울산 서생의 배밭, 부산 대저의 파밭도 눈에 띄게 줄었다. 사과만 해도 향후 10년간 매년 1%씩 경지면적이 줄 것이라고 농촌경제연구원은 전망했다. 공급이 준다면 가격이 내려가기 힘들다. 식당에서 후식으로 사과가 나오던 일은 머지않아 ‘전설’처럼 들릴 날이 올 수도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농축산물 할인지원에 역대 최대수준인 6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돈이 없다며 과학기술계, 교육계에 대한 예산도 대폭 삭감한 정부지만 총선을 앞두고 과일값 폭등에 화난 민심, 다시 뛰기 시작한 물가를 그냥 방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농촌에 돈 쓰기 싫어하지만, 결국은 쓸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다.
감별의 쓴맛, 감당할 준비 됐나
높아지는 탄소장벽에 엉뚱한 정책들
이번에도 부끄러움은 우리 몫인가
금(金)사과 현상이 어쩌다 발생한 올해 한 해의 일이라고 치부하다 보면 큰코다칠 수 있다. 금사과 현상은 기후변화에 대한 인스타 좋아요 구매 경고,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경고일 수 있다. 차제에 농산물에 대한 생각, 농촌에 대한 정책을 정부는 바꿀 필요가 있다. 일회성 재정지원, 수입확대는 장기적 대안이 될 수 없다.
월급이 좀 올랐다 한들 먹거리값이 더 뛰면 서민의 삶은 더 팍팍해진다. 한국은행은 지난 5일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소득(GNI)이 3만3745달러로 1년 전보다 2.6% 증가해 1년 만에 상승반전했다고 밝혔다. 소득이 오른 만큼 내 삶도 그만큼이라도 나아졌을까? 전년보다 71% 올랐다는 사과 가격 기사에 2.6% 증가한 국민소득 소식이 더없이 공허하게 느껴졌던 이유다. 사과 한 알에도 손 떨리는 사회는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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